생의 안뜰(粹粹한)

그 여자의 파란(波瀾) episode. 4 복종

작은이1 2008. 1. 5. 00:42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며 환호하는 가운데 참으로 오랜만에 그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H 그 남자마저 아이를 보며 사랑스럽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가 하며,

잘 웃기도 하고 심지어 초로임에도 불구하고 포대기로 아이를 들쳐 업고 큰길까지

산책을 다녀오곤 했다. 가끔 아이가 눈을 맞춰 웃어주기라도 하면 숨넘어가듯

그 남자도 따라 웃으며 좋아했다.

오래 전 J 그녀가 이집으로 이적을 하기 전에 누렸던 행복과 즐거운 일상,

사는 일에 주인공이 되고 극의 대사를 외듯 재미있게 지냈던 일들이 차츰 차츰

터를 넓혀가기 시작 하는 듯 했다.


20여명에게 음식을 해 먹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벽시장을 봐 온 그 남자의 아내는 아침도 그른 채 음식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가족들이 자신을 위해 얼마나 헌신적인지,

거룩한 계보와 위엄의 피를 지닌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선지,

그 남자에게 불구의 친절을 선사하기 위함 아니면 덜떨어진 사람이 펼치는 순종의 깊이는

어디까지인지, 그런 피의 배후가 꾸미는 행복한 가정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보여주길 바라면서 치루는 연극처럼 그 남자가 모임을 집에서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상에 차려졌던 음식들이 약간의 찌꺼기를 남기며 하나 둘 비워지면서

적당하게 취한 손님들은 늦은 오후의 해를 밟으며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큰방에서 혼자 잠들었던 아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울지 않고 깨어나 한동안 혼자 노는 듯 조용하더니

조금씩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내 피의 가장 맑은 부분을 증류하여 만든 피,

내 살의 가장 순결한 부분을 정갈히 떠 만든 살이며

내 뼈의 가장 견고한 줄기만 골라 세운 뼈대,

내 영혼의 가장 순정한 부분만 골라 영혼의 집을 지어준 아이,


그 남자의 즐거운 시간은 남은 가족들에게 늘 안전대처럼 작용하였기에

즐거움과 시간이 공통분모로 자리할 때는 잠시 긴장의 소홀도 비껴가야

마땅했는데 그 날은 그런 공식이란 외우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어서

쓸모없었나보다. 즐거움과 느슨한 시간의 막간으로 화르르 피어오르는 불안의

공기는 그 누구도 눈치 챌 수 없게 서둘러 달려들었다. 사건의 중심으로 가는

침침한 공기처럼 천천히 아이에게로 자리를 옮기는 그 남자 H가,

켄타우로스처럼 언제 화낼지 모르는 그 남자가,

꼬투리만 잡히면 상식을 뛰어넘는 그 남자가,

강한 자 앞에 한 없이 약하고 약한 자 앞에 무한히 강한 그 남자가,

그래서 언제나 가족들에게 두려움 긴장 무섬증 강박감에

시달리게 하는 그 남자가, 아이의 멱살을 잡았다.

꽃샘바람에 이리 치이고 저리 밀려나는 연한 햇잎처럼 그 남자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좌우로 흔들리기도 하고 자이로드롭의 시스템처럼

위로 솟구쳤다 아래로 낙하하기도 하면서. 연꽃잎 살결을 한 아이가

J 그녀의 둥근 액정에 맺혔다.

핏줄은 부조형태로 튀어오르고 그 끝으로 노오랗게 힘의 압박이 밀려난

그 남자의 거친 손도 그녀의 동공에 판화처럼 새겨지면서~


멱살, 

비슷한 두 힘의 대결 구도 속에 비급한 한 힘이 약삭빠르지 못한 한 힘에게

가하는 지극히 불명예스럽고 치사하며 더러운 행위. 아이는 이어 버림받듯

이불 위로  떨어지고, 낮술에 얼굴까지 붉게 타오른 그 남자는 내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베개를 당겨서 누워버린다.

손 쓸 겨를이 없었던 순간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지나가고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를 껴안은 한 여자 J는 세상의 모든 이질적 문화 앞에 무릎 꿇었다.


참담함이란 꼭 가차 없이 와야지만 슬픔으로 빠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슬픔도 절망도 눈치를 가진 보이지 않는 생명체 일수도 있겠다.

이미 타인의 것이 되어버린 희망이란 단어가 가진 행복, 기쁨 등의 식솔들을 끊어내며

그녀 J는 세상으로부터 점차 소외되기로 했다.

세상을 따돌리는 모의를 꿈꾸며 잔인하게 고립되는 즐거움, 원망도 희망이 있을

때만 부축 받을 수 있는 가냘픈 생의 가지이기에 허구처럼 보이는 참 이야기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