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안뜰(粹粹한)

편지

작은이1 2011. 9. 5. 19:17

안녕하세요. 미세스~

저는 벨라예요. 이 집 전 주인이죠.

이삿짐 꾸릴 날짜가 다르네요. 다시 뵙기 어려울 것 같아 몇 자 남겨봅니다. 제가 이 집에서 보낸 햇수도 벌써 십칠 년이 되었네요. 집 어디를 둘러봐도 제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삿짐을 정리하며 다음 사람을 생각했어요. 더러 보수를 하였는데... 불편한 부분은 가족들의 기호에 따라 잘 고쳐서 오래도록 이 집이 자연의 일부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정말 고마운 게 미세스~ 당신도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니 아마도 이 집은 당신 가족들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공간이 될 것 같네요.

 

여기는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아이 둘을 이 집에서 키웠죠. 처음엔 산자락에 덩그러니 집만 있었는데... 이런 곳에 정원을 만들고 과수를 심고 꽃을 분양하고 아이들이 뛰어 놀 오두막과 수영장을 제 손으로 만들었네요. 보셨을 수영장엔 늘 물이 넘쳐납니다. 이 물은 1킬로미터 정도 넘어 허드슨 강줄기에서 끌어다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 년 내내 마르는 법이 없네요. 간 혹 홍수가 나면 물이 넘칠 경우가 있으니 둑 아래쪽 수문을 열어 수위를 조절해 주세요. 사과나무는 식구 수인 네그루입니다. 가을이 되면 가지가 휘도록 사과가 열리네요. 사과는 겨우내 먹을 잼을 만들어 지하 저장고에 두고 먹었습니다. 눈이 많이 올 때면 마을까지 나가기가 어려우니 잼은 정말 필요한 음식이 될 거예요. 사과 잼 만드는 법은 따로 적어 지하 저장고 서랍에 뒀는데 필요하시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문을 우측으로 자작나무 숲이 보이시죠? 자작나무는 계절 내내 희고 푸른 바람을 불러다 줍니다. 처음에 제가 이 집을 선택할 때도 자작나무 때문이었습니다. 멀리서도 우리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작나무처럼 밝고 환하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왠지 동화의 나라처럼 자작나무 숲은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줄 수 있겠다 여겼어요. 자작나무 숲 속을 경작 하듯 정비했어요. 물론 아이들이 위해서 였죠? 원두막 일곱 채에는 각기 다른 종류의 책이 들어 있습니다. 놀다 지치면 원두막에 들어가 책을 읽더군요.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어 참 좋았습니다. 아마도 미세스~의 아이들도 정말 좋아할 겁니다. 가끔 간식을 준비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보시길 바랍니다.

 

정원엔 철마다 다른 꽃이 핍니다. 특히 가을엔 데이지가 한창 일거에요. 화단을 정비할 때 잡초와 화초를 구분 할 수 있도록 계절마다 피는 꽃의 싹부터 모두 사진을 찍어 지하 서랍에 함께 뒀습니다. 참! 사과나무 뒤쪽으로 덩굴 식물들이 보일 거예요. 지저분하다고 베버리지 마세요. 한 쪽은 포도 덩굴이고 한쪽은 키위입니다. 그 옆 빈터엔 해마다 호박을 심었는데 구덩이에 거름을 듬뿍 해 뒀습니다. 호박은 영양분도 많고 오래 저장 할 수 있으니 꼭 키워 겨울나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씨앗만 심어 놓으면 알아서 호박이 열리더군요. 아이들 방 앞에 있는 후박나무는 아이들이 곧잘 타고 밖으로 나가는 일종의 비상구예요. 창문을 스치는 가지는 가지치기를 해주시면 아이들이 다치지 않을 것 같아요. 마당을 가로질러 개암나무 위의 오두막에는 다람쥐 집이 있습니다. 실제로 다람쥐가 살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다람쥐들도 놀라지 않게 미리 말을 해주세요. 다람쥐 먹이는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숲 곳곳에 참나무와 떡갈나무 갈참나무가 즐비하거든요. 집 지하실엔 공구를 그대로 뒀습니다. 도시로 나가는 우리보다 여기에 머무르실 미세스~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더러 낡았지만 손 떼가 묵은 만큼 날이 잘 벼린 연장들입니다. 유용하길 바랍니다.

 

집 안 구조를 바꾸실 경우 나무에 못을 사용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잘 살펴보시고 분리 하면 따로 나무를 사지 않아도 변경이 가능할 거예요. 그리고 계단 아래는 비밀 공간이 있습니다. 식구 외엔 전혀 알 수 없도록 첫 번째 계단 벽면에 네모난 조각을 누르면 문이 열립니다. 집 꼭대기에 있는 다락 보셨죠. 2층 거실 옆에 나선형 계단이 다락으로 오르는 곳입니다. 다락에선 멀리 있는 마을까지 다 보여서 식구들 모두 좋아하던 공간입니다. 밤에 가족들 모두 카펫에 누워 수많은 별들도 봤습니다. 다락에서 보면 주황색 지붕이 멀리 보일 거예요. 그곳이 제가 일주일에 두 번은 가서 빵을 사는 곳입니다. 주인아주머니 솜씨가 좋아 빵이 이 마을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미리 주문하시면 아침 일찍 아저씨가 자전거로 배달을 해 줍니다. 빵집 건너엔 슈퍼마켓이 있는데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진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녁 다섯 시면 마치고 주말에도 쉽니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 비해 필요한 물건은 대체로 보유하고 있으니 급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동네 어귀 벽면이 온통 하얀 집은 정년퇴임한 의사 내외분이 살고 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 하면 큰 병원에 가기 전에 도움을 청하세요. 동네일에는 마다않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세요. 인상도 정말 좋고 특히 아이들을 좋아하세요.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제법 떨어져 있어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여 우리 가족들은 계절에 한 번씩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간단한 음식을 해 먹었습니다. 친분을 쌓아 놓으면 작은 마을답게 많은 것을 나누게 될 겁니다. 곡식은 물론이고 언제든 달려와 도와주거든요. 어디에 살든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쪼록 이곳에서 미세스~ 당신의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먼 곳으로 이사를 가 이곳에 들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 데리고 한 번은 다녀가고 싶을 거예요. 많이 그리울 테니까요.

 

참! 여름이나 겨울엔 아이들을 데리고 허드슨 강 지류로 낚시를 갑니다. 자작나무 숲을 왼쪽에 두고 우회하면 삼나무 침염수림 따라 송어가 강을 거슬러 오릅니다. 훌륭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으니 참고 하세요.

 

 

                                                                                                                    1911년 9월 5일 월요일에... b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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