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 맨 위 층 한 번도 써 본적 없는 찻잔
수차례 이사 다닐 때 외엔 외출도 자유롭지 못한
불구의 몸 하나 사리고 있다
거뭇한 것이 차림새도 생 날것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내력을 보자면 묵사발 계열에 가까운 것이
식솔 같은 다기 한 벌 끼고
긴 잠에 하품하다 그대로 굳은 듯
된장 고추장 막 섞은 막장이나 담겨져야
마구 내치며 돌려야만 제 소임으로
폼생폼사 할 것이
어디로든 끌려 나가볼까
어디든 뛰어내릴까 궁리하다
세상 밖으로 나서는 두 발 스스로 움켜쥐고
정물에 든 표정으로 낡아가고 있다
누구라도 저 직벽의 유리문을 열어주면
오랜 고립에서 터득한 기혼氣昏의 지겨움을
한 걸음 단애의 길도 마다않고
절리쯤은 마지막 유속이라 고맙게 건널 텐데
머리 올리듯 다완에 첫 번째 찻물을 드린다
분청粉靑 틈새로 실금같이 도는 핏기
탱탱하게 부푼 생의 일괄一括이다
심 정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