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 소설
1. 회귀
지하철을 타고서야 너무 이른 출발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왜 교통체증을 생각했을까. 역사를 출발한 지하철은 일정한 소음을 끼고 달렸다. 엉덩이 크기만 한 의자에 마음 괴고 열차는 지상에서 지하로 길을 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설렘이 멈추는 역마다 쉬어 가곤 했다. 한 시간의 여유 위에 나를 부려놓고 열차는 갱도를 따라 가벼렸다. 열차가 남기고 가는 굉음은 길지 않았다. 남포동을 끼고 몇 해 전까지 나의 주소지였던 충무동 해안 시장, 오가는 수많은 발자국 소리들이 지하도를 먼저 채우고 있었다. 나는 서쪽으로 난 계단을 밟았다. 저녁이 되면 서쪽으로 가는 햇살에 몸을 세우고 늘어난 그림자를 되돌아보는 게 좋았다. 햇살은 지하도 입구에 겨우 걸려 있었다. 이 계단의 끝에서면 궁상스런 나의 유년과 어둑살 엄마의 삶이 삭아 있을 것이다. 썩은 생선 냄새보다 더 맡기 싫었던 멸치를 우려낸 국물이 가게 안을 채우던 시절이었다. 섬유유연제를 많이 써도 옷에 배인 냄새를 제거 하진 못했다. 멸치 냄새를 품은 수증기가 방안으로 스밀 때마다 방문을 힘껏 닫았다. 그 때마다 엄마의 드센 잔소리가 쉼표도 없이 들이쳤다.
한발 한발 길을 디딜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내 집이 있던 장소는 이십여 년 전 그대로 단층이었다. 엄마의 손맛 칼국수 집 간판이 내려지고 가족사랑 건강원 이란 이름이 걸려있었다. 그 사이 주인이 또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두 간판 모두 먹거리라서 묘한 인연이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써 놓은 낙서들이 남아있을까 싶어 출입구부터 살폈지만 개조된 집에서는 한 줄의 문장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잘 닫히지 않던 알루미늄 미닫이가 통유리로 매끈하게 바꿔있었다. 비뚜름하게 옆집으로 나가 앉았던 붉은색 고무 물통도 없어졌다. 엄마는 청소를 할 때마다 조금씩 물통을 옆집 쪽으로 옮겼다. 한바탕 입 싸움이 있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지만 물통은 여전히 옆집 쪽으로 기울기를 주저하지 않았었다. 엄마의 지난한 싸움. 내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이 불편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도 그 경계를 넘어 먹을 음식이 오가고 삶이 지닌 아픔들이 마음의 벽을 허물기도 했다.
건강원 안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닫힌 문 안으로 조등처럼 낮은 촉의 형광등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로변의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여전하단 말이 어울렸다. 어둠이 스멀거리며 시장 후미진 곳으로 찾아들고 있었다. 햇볕에 바랜 천막 안에, 낮은 처마 밑에 오래전 얼굴들이 보이기도 했다. 세월의 낌새가 비껴가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들킬까 서둘러 길을 빠져나왔다.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어 돌아보면 예전보다 많아진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바쁘게 걸어가며 스친 흔적이었다.
충무동 새벽시장 간판이 위용을 자랑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장 위로 대형 아케이드가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둠은 수십 분을 거치는 동안 불빛의 조도를 높였다. 하루를 마감한 상가들이 앙다문 입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고객선을 지킵시다’는 플랜카드가 간혹 부는 바람이 팽팽해졌다가 후줄근해지기도 했다. 매끈하게 포장된 길 양옆으로 빈 가판대가 같은 자세로 사열하듯 서 있었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핏대를 올리던 상인들과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사람들의 실랑이가 벌어지던 곳이 말끔해져 있었다. 그들의 질서가 왠지 낯설어 서운했다. 무질서 속의 질서가 그리웠다.
엄마는 하루에도 여러 번 길을 건넜다. 음식을 할 재료들은 대체로 배달이 되었지만 싱싱한 채소만은 새벽바람을 맞받으며 직접 찾아 나섰다. 단골가게가 생기고부터는 내게 심부름이 주어지기도 했다. 거칠고 복잡하고 부패한 것들이 게워내는 이질적 냄새 때문에 적응이 안 되던 곳이었다. 끊임없이 엇길을 생각하던 나의 십대가 적채된 잎처럼 짓눌려 있었다.
해안 길의 모퉁이를 돌자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오래전과 같이 길은 파이고 그 파인 길로 썩은 물이 고여 있었다. 유년의 우울이 고인 물 같아 신발로 지긋이 밟아보았다. 얕은 물살은 제자리로 쉽게 돌아왔다. 바닷바람은 어린 시절처럼 차갑지 않았지만 추억 때문에 한기가 드는 듯했다. 야채시장과는 달리 해안의 어물전은 남은 생선을 팔기위해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었다. 작은 대야에 담긴 고등어 몇 마리가 터지는 빛의 밝기에 따라 신선도를 달리했다. 뭍에 올라서도 감지 못하는 투명한 눈과 시퍼런 등살, 지느러미를 세우고 물살을 치며 이동하는 고등어 떼를 잠시 떠올렸다. 퍼덕거리다 곧 잠잠해졌을 순간도 스쳤다. 손수레를 끌며 집으로 향하는 행상의 남루한 등을 불빛이 밀고 있었다. 삶에도 어둠이 극명해지는 순간이 생각나, 눈에 비친 풍경에 어룽이 졌다.
인적이 드물어진 부둣가, 어선 한 척에서 비추는 강열한 빛을 쫓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어부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검은 실루엣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남자들의 바다가 잠잠히 젖어들고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노구의 몸 한 둘은 늦은 밤에도 정물처럼 웅크리고 바다를 향하기도 했다. 그 바다에 적을 둔 사람이 그리운 날인가 생각했다. 한 차례 바람이 머리채를 헝클어놓고 사라졌다. 거기 있을 거라 믿었던 내 유년이 낱낱이 흩어졌다.
전화기가 울었다. ‘어디쯤 이야 언제 도착하는데’
2. 여고 동창생
진짜 반갑다 이게 얼마 만이고 잘 살았나 가시나들
니는 하나도 안 변했네 그때나 지금이나 한 미모 하고
우찌 살았노 다들 소식 좀 전하고 살면 어디가 덧나나
영숙아 니는 서방한테 사랑받고 사는 갑네 얼굴에 다 써 있다.
니는 몸에 부티가 좔좔 흐른다야 시집 잘 갔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보고 싶었는데 우째 둘이 우연히 만날 수가 있노 보통 인연이 아닌 갑다.
딴 애들 소식은 모르나 미희는.
니는 멀리 이사 갔다면서 어디고
산성마을, 한 번 내려오기 어렵다 그냥 내려오면 되는데 마음먹기가 안 쉽다 식당 문 닫는 게 쉽겠나. 텃밭에 채소도 직접 키우고 해서, 가족들 데리고 놀러 온나 자고 가도 된다. 다들 자가용 있을 꺼고 아니면 식물원 입구에서 십 분마다 버스도 있다. 그거 타고 온나. 서방하고 싸우고 갈 데 없으면 와도 된다. 사흘 아니 한 달은 재워 주께.
낮에 만나면 좋을 낀데 일 다니나.
쉬면 되겠나 애들은 커 가제 그리고 요즘 노는 사람이 어디 있노 우리 아파트도 낮에는 할매 할배들 하고 놀이방 안가는 애들 몇 몇 뿐이다.
맞다 요즘 다들 참 바쁘게 살더라 우리 때도 뭐 안 그랬나 맨 날 시험에 그 때는 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더노 지금은 시간도 일사천리도 가데.
우리 내일이면 사십대다 누가 우리한테 사십대가 올 줄 알았나 나는 몰랐다 영영 십대 일 줄 알았지.
그래도 이렇게 여고 친구도 만나고 좋네 샘 소식은 아나 우리 고등학교 담임 샘, 나는 그 샘만 생각하면 엄마 생각난다 내 한테 얼마나 잘해줬다고 우리 아버지 큰집에 갔을 때 그 샘이 알았다 아니가 맨 날 날 불러서는 혹시 비뚤어질까봐 책도 사주고 좋은 얘기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너거 모르게 샘이 집에도 데리고 가고 그랬거든 일부러 샘이 내 한테 심부름도 시키고 안 그랬나 내가 샘을 찾아가야하는데 사는 게 좀 그렇다 진짜 찾아봐야하는데.
그러게 그 샘 성격은 좀 그랬는데 우리 모르게 힘든 애들 챙기고 졸업하고 나서 그 소식 듣고 마음이 좀 찡 하더라 내 한테 한 거는 아니지만 고맙고 그렇더라.
야는 옛날부터 착하제 니 착하다는 말 제일 듣기 싫다 안했나 다들 착하게 생겼다 해서 나쁜 짓은 하지도 못하겠다고 본성이 어디 가겠나 천성이다 천성.
아는 너 거 애는 멫이고
아들 둘인데 힘들어 미치겠다. 니는
딸 둘 나는 괴안타 큰딸은 다 알아서 해서 입 댈게 없는데 작은 딸은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서 내가 감당이 안 된다. 요즘 세상에 때릴 수도 없고 요즘 잘 못 때렸다간 부모도 고소 당하는 거 알제.
우리 때는 그래도 세상 좋았다 선생님들이 어디 요즘처럼 그랬나 샘들도 옛날 샘들 같지 않고 학생들도 우리 때하고 다르고.
다 그렇겠나 사람 나름이고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사람 모이는 법이고 내가 나쁜 짓하면 그런 사람이 또 옆에 모인다 그러게 다 지 할 탓 아니겠나 야 무거운 얘기 하지마라.
애들은 애들이고 우리는 우리고 이제는 우리도 우리 엄마들 세대처럼 그리 못 살고 애들도 그리 안 한다 안 그라더나 이젠 다들 나이 들면 요양원 가야한다고.
맞다 그라더라 뭐 요양원 생활 하면 나이도 비슷하고 친구 삼아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애들이 같이 살라고 하겠나. 나도 시어른들 같이 살자하면 싫던데 그러니까 우리도 노후준비 해야 된다 안 하더나 세상이 좀 많이 변했다.
우리가 벌써 이런 얘기 해야 하나 무섭다야 나는 그래도 애들 잘 키워서 같이 살란다.
그래 돈을 쥐고 있어야 무시 안당하고 돈이 있어야 한다니까 아이고 어쩌다가 자식보다 부모보다 돈이 귀한 대접 받는 시절이 됐으까 돈이 자식이고 돈이 부모고 참말로 따지면 우습다 그자.
참 주야 너거 엄마 잘 계시나 욕은 디게 먹었어도 우리한테 참 잘했다 아니가 너거 집에 모여 갖고 밤샘 한다고 그래도 공부는 니 혼자 했데이 우리는 밤참 먹는 재미로 갔고 너 거 엄마도 같이 공부 했다 아니가 암만 식당 이지만 우째 그리 챙겨 먹였는지 몰라 나는 시험만 치면 살 쪘다 엄마 땜에 알제 지금 이 살들 다 그 때 살이다 엄마 많이 늙으셨제 우찌 사시노.
우리 엄마 좀 늙었지 같이 산다 혼자서 내 키우고 시집보냈는데 딸까지 엄마처럼 혼자 살게 돼서 그게 좀 미안타 왠만 하면 이혼 안하려고 했는데 우리 엄마 내가 엄마 사주 닮아서 그렇다고 엄청 속상해 한다 옛날에 드세고 하던 엄마가 아니다 우리 엄마 평생을 장사했는데 내까지 장사를 해서 그것도 좀 미안타 우짜겠노 배운 게 식당인데 나도 자식들 키울라니까 별 수 없더라.
그리 살면 됐다 사는 게 별거가.
맞다 우리 큰 언니가 그러더라 애들 좀만 있으면 다들 혼자서 큰 줄 안다고 자식들 진짜 품안에 자식이라고 소용 없다더라 우리 언니 그래서 늘그막에 공부한답시고 백화점 문화 센터에 다닌다 내보고 같이 다니자 하는데 나는 아직 정신이 없어서 애들 학교 데려다 줘야하지 남편 출근에 혹시 술이라도 마시면 데리러 가야하지 애들 학원으로 밤늦게 과외까지 짬이 없다 오늘은 모른다 했다 사는 게 그렇다 내가 없다 그치만 또 그 짓 안하면 뭐 하겠노.
살만한 집 자식은 다르네 어쩐지 니가 행복해보이더라 가시나 행복 하다고 투정부리는 거 좀 봐라.
가시나 누군 안그러나 니는.
나야 뭐 밥 하는 정도 빼곤 우리 남편이 다 해준다 퇴근 해 와서 청소도 해주고 마트 장도 다 봐온다 나는 좀 아팠잖아 시집가서 야 죽을 고비 넘기고 나니까 식구들이 다 뭘 못하게 하네 지금도 조금 힘들다.
그래도 너거는 남편도 있고 자식들 다 잘 커고 좋겠다 내 앞에서 그럴래 나도 뭐 괜찮긴 하다 엄마도 계시고 아들 딸 다 말 잘 듣고 먹을 거 걱정 안하고 내만 열심히 하면 괴안타 장사도.
맞다 다 잘 될 거다 잘 될 거다 하면 잘 된다더라 우리 이제 가끔 만나자 여고 동창생 연락도 대부분 끊기고 내가 니들 말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가 별로 없다.
그러자 나도 니들 보니까 진짜 좋다 우리 한 달에 한 번씩 보까 계모임처럼
3. 가족
엄마는 이미 잠 들어 있는 듯했다. 숨은 한 박자 느리게 휘파람 소리와 함께 섞여 나왔다. 잠 속에서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하는지 대뜸 욕 한 마디가 튀어 나왔다. 가끔 꿈속에서 엄마는 여전히 칼국수를 팔기도 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이 들이치는지 암만 너를 불러도 너는 방안에 처박혀서 대답도 않고 연방 칼국수를 끓여내도 주문이 밀리는 거라 봐라 칼질 한다고 꿈이었지만 손목이 다 아프다 칼국수 기계 그거 얼마 한다고 꿈에서도 사지 않더라 아이고 돈을 안 받았네 그 돈 다 받았으면 부자 됐을 건데.
엄마는 그런 말 후에는 꼭 혼자 웃었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형체만 보이는 엄마의 모습을 지켰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자 이불도 덮지 않은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아마도 내가 들어오는 걸 기다리다 새우잠을 자는 것 같았다. 남편과 이혼 후 엄마의 불침번은 심해졌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어딜 그렇게 싸다냐고 따졌다. 남편과의 불화 이전에 엄마는 사위를 수시로 무시했다. 밥을 먹어도 옷을 갈아입어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당신 딸에 대한 짝사랑 같은, 아버지를 여의고 딸 하나에 의지하며 지새온 날들을 보상 받기엔 사위는 눈에 차지 않아 보였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네 가게에서 손님이 먹고 간 그릇이나 치우는 사위를 어여삐 볼 장모가 아니었다. 남편은 살가운 사람이었지만 엄마는 말 속에 가시를 깊이 찔러 넣고 말을 던졌다. 딸자식 하나 두고 먼저 간 아버지를 엄마는 힘들 때마다 욕을 해댔다. 그 욕이 고스란히 사위에게로 이전되었다.
이불을 끌어다 어깨를 누르자 눈도 뜨지 않고 ‘다녀왔냐 그만 자라’ 한 마디 던지고는 돌아눕는다. 잠들지 않은 목소리, 엄마는 딸의 귀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은 듯했다. 산속 마을은 쉽게 고요해졌다. 주말엔 예외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저녁도 일찍 들었다. 도시에 살 땐 몰랐던 것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풀벌레 소리가 그랬고 저녁별과 달이 그랬다. 담장이 없는 집들은 호박이 넝쿨째 옆집으로 발을 뻗기도 했다. 여닫이 창문을 낸 것은 엄마의 생각이었다. 한 쪽짜리 창으로 하늘은 감나무 가지를 걸어 놓았다. 진노란 감 몇 알이 잔바람에 오르내렸다.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마우스를 급히 누르는 큰 아이가 대뜸 ‘엄마 데이트 하고 왔어’하고 묻는다. 데이트는 무슨‘ 나는 말꼬리를 흘리며 밖으로 나왔다. 마을 입구에 떠 있던 달이 어느새 상계봉 쪽으로 옮겨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온 날은 늘 마음이 달떴다. 몸은 뭐가 마려운 강아지처럼 뒤뚱거렸다. 마당에 놓여 진 파란 색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한 해를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간 플라스틱 탁자 위에 말라붙은 막걸리 자국이 보였다. 먼지의 입자가 획만 그은 수묵화를 닮아 있었다.
엄마 외로우면 데이트도 하고 그래요 남자 친구 없어 내 친구들도 엄마 아빠 이혼한 사람 많은데 들어보니까 애인 있는 사람도 제법 있던데요 미연이는 엄마 남자친구 한테서 용돈도 받아쓴다든 데 난 엄마가 외로운 거 싫어 나중에 다 우리들 키운다고 데이트도 못했단 말도 듣기 좋진 않을 것 같고요 엄마가 늙어서까지 혼자 돼 가지고 할머니처럼 같이 살자면 난 좀 그렇겠는데 솔직히.
엄마도 좋은 사람 생기면 혼자 살지 않을 거거든요 하나 밖에 없는 따님 내가 왜 니들 뒤치다꺼리 하고 살겠어요 늙어서 까지 안 될 말씀입니다 아가씨.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고 딸이 나와 하는 말을 맞받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딸은 엄마의 사주를 대물림 한다는 말이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여사님들 안주무시고 뭐 하세요 두 분께서 달 빛 아래 대담이라도 하시나 동네 잠 다 깨우겠네 은정아 니 웃음소리 너무 커더라 가시나가 목청이 그래갖고 시집이나 잘 갈지 모르겠다.
오빠는 내 걱정 말고 좋은 대학에나 갈 생각 해 요즘 대학 좋은 데 안 나오면 장가 못가는 거 알지.
좋은 대학도 좋은데 취직 못하면 더 안 되지 나는 취직 잘 되는 곳 갈란다.
한 밤중에 안자고 뭐하는 짓이고 시끄럽거로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개 짓는 소리 안 들리나.
할머니 저 개는 우리 땜에 짓는 게 아니고요 저거 집에 소리가 나서 짓겠죠 이렇게 먼 데 어떻게 개가 우리 소리 듣고 짓겠어요.
마 시끄럽다 내일 아침에 학교도 가고 애미는 장사도 해야 하는 데 빨리 자라.
할머니도 그냥 낑기세요 부러우면 부럽다하시지.
그래 내가 부러워서 그란다 애미는 니들 엄마기 전에 내 딸인 거 알제 내 딸 힘들게 하지 마라 아깝다.
할머니 내리사랑 아시죠 엄마는 아마도 우리 일걸요.
알았다 니들 다해라 내가 치사하고 더럽고 앵꼬바서.
엄마 들어갑시다 애들아 그만 들어가 자자.
고요한 하늘 아래 작고 소박한 내 울타리 안에 잔잔히 번지는 웃음이다. 이웃집도 건너 집도 개 짓는 소리가 툭툭 불거져 나왔다. 맑고 푸른 가을 밤. 지상신이 수묵화라도 그리다 말았는지 붓이 지나간 자리처럼 은하수 끝자리가 희미해져 있었다.
달 빛 아래로 누군가 지나가는 지 자갈 밟는 소리가 마음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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