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안뜰(粹粹한)

추락

작은이1 2011. 12. 14. 00:44

 

추락

 

 

심 정 미

 

창문을 단단하게 막아도 소리가 새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낡을 대로 낡은 집과 오랜 습관에 의해 묵인해 버린 소음들이 어김없이 기어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역동적이라느니 역시 자갈치는 삶 자체라며 항구도시 부산의 대표적 상징으로 역설했다. 내가 반골의 기질을 타고 난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인정하고 또 인정하는 부분이다. 아무리 울적해도 자갈치를 돌아 충무동 시장까지 걷다보면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마음은 발랄해져 있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하루 24시간 소리의 근원지에 산다는 것은 나에게 무리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나날들이 지나갔다. 자갈치! 밤길을 걸을 때마다 불빛의 호의를 받으며 나는 매일매일 먼 나라에 대해 꿈꾸고 있었다. 제발 이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내 작은 소망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발악을 해봤지만 식구 누구도 콧방귀 뀌는 사람이 없었다. 강을 거느린 전원주택, 넓은 창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비쳐드는 언덕 위의 집은 아니래도 생각 속의 집으로 늘 이끌렸다.

 

햇살이 창문에 들어서자 신고식처럼 여자의 고음이 첫 소절을 끊는다. 뒤이어 저음의 남자도 묵직하게 되받는다. 고저장단이 절정에 달하자 베이스에 해당하는 구경꾼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욕설에 비해 구경꾼들의 화음은 저조했다. 말리는 사람이 적다는 건 싸움이 쉽게 끝난다는 징조다. 그 날의 시작은 단조로웠다. 골목으로 상인들이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하고 발자국 소리가 볼레로 춤사위처럼 빨라지고 있었다.

 

일나라. 한번 부르면 일어나라 맨 날 내가 무슨 죄고. 지겹다 지겨워.

고모의 볼멘소리도 저 시장에서 울려오는 싸움 소리처럼 그저 그렇다. 나는 적응되고 있었다. 무기력하고 무료하게

아빠 우리 언제 이사 가요. 난 여기가 정말 싫은데. 냄새, 시끄러운 소리, 지저분한 거리. 음식점 옆에 술집 또 술집. 무엇보다 사람들이 무서워서 싫다니까.

아무리 떼를 쓰도 벗어날 수 없는 이곳을 이젠 정말 떠나게 되었다.

 

우리 집은 부산에서 아주 오래된 아파트다. 신천지가 지어졌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던 곳, 주위로 신축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조금씩 위축되어 이제는 몰라보는 곳이다. 자갈치의 신 건물이 위용을 자랑할 때는 아예 찌그러진 냄비처럼 궁색하기 그지없어졌다. 일층으로 늘어선 상가는 새로운 자재를 들여 개량을 해도 이미 낡아버린 뼈대를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사람들이 입을 대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금방 익숙해지고 잊혀졌다. 건물만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과 달리 나는 나름대로 이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어느 날부터 매력으로 보였으니까. 골목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수직의 좁고 긴 창문틀이다. 2.3층의 발코니에 서서 어린 시절의 나는 공주가 된 듯 거드름을 피웠었다. 그렇게 웅장하고 거대했던 집이 건물들에 파묻히고 세월에 삭아버리고 구석구석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신기한 이야기나 전설 하나쯤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나만의 성(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내 기억에서 조차도. 집이 남루해지는 것같이 꿈도 희미하게 탈색되는 이 곳, 24시간 잠들지 않는 곳, 부산 안에서도 그들만의 법과 질서가 어지럽게 공존하는 곳, 세월의 변화에도 결코 변화하기를 꺼려하는 곳, 자갈치는 할머니가 그랬듯이 아버지가 살아냈듯이 나와 인척들이 물고기의 내장처럼 뒤엉켜 사는 곳이다.

 

알박힌 종아리를 비비며 하필이면 고모를 닮아서 짧은 치마도 못 입는 데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종아리마저 굵을 대로 굵어졌다고 혼자 궁시렁 거리는 나를 보고 고모는 왜 내 탓을 하냐며 신경질을 냈다.

내가 닮으라고 했냐.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고. 그나마 고모 닮아서 얼굴 작은 걸 고맙게 생각해 이년아. 네 엄마 닮았으면 얼굴이 멍석만 했을 거다. 멍석 뭔고 아냐? 멍석! 나락 말리 때 펴는 네모나고 판판한 게 멍석이다 아냐? 고맙게 생각안하고.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나는 고모를 빼다 박았다. 고모를 닮은 게 싫은 건 아니지만 허벅지 만은 절대 아니다. 남들 허리통 만하게 굵은 고모의 허벅지에 깔려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을 만큼 고모의 허벅지는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되도록 고모 옆을 피해 잠들었다.

 

이사 간다고 그렇게 좋아했건만 끝없이 오르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경치 하난 죽여준다고 했지만 경치는 자갈치가 더 좋았다. 몇 걸음만 나가면 파도가 출렁이는 방파제가 있고 방파제에서 맞는 저녁햇살은 눈이 부셨다. 달이 가득 찬 날은 쏟아진 윤슬 위로 고깃배가 유유히 흘러 다녔다. 남항내항은 어느 아름다운 풍경보다 이국적이다. 새우깡을 손끝에 들면 갈매기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날아와 새우깡만 채갔었다. 나는 갈매기들이 나를 기억한다고 생각했다. 갈매기가 특별히 나만 기억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뿌듯해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어느 새 갈매기들 틈에서 머나먼 수평선으로 날아오르고 있었고 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처럼 특별한 갈매기가 되어 있었다.

 

며칠에 한번 씩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자갈치를 동네 한 바퀴 돌듯했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 손엔 만 원짜리 지폐가 몇 장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와의 외출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수금은 당당하고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직업은 공판장 간부였고 남들보다 조금 위치가 높아보였다. 아버지랑 다닐 때 사람들이 인사를 해 오면 마치 내가 높은 사람이나 된 것 같아 우쭐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예쁘다’고 했을 때는 정말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라고 착가도 들었다. 아버지가 언니만, 동생만 데리고 나갈 때면 쫓아나가 아버지의 남은 한 손을 차지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그 큰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비벼 헝클어 놓고는 배시시 웃곤 했다. 질투심이 나의 경쟁력이었던 시절이다.

 

엄마가 어떻게 집을 나가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고 단정 지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산복도로로 이사 온 내 가족은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 언니, 남동생 그리고 나. 우리가족은 이렇게 여섯이다. 나름 단란한 공동체다. 어쨌든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술을 날마다 입에 댔다. 할머니가 아무리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고 어느 날 부터 할머니랑 아버지랑 고모 셋이서 신세 한탄을 하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고모는 시집을 가야 한다했고, 할머니는 여행도 다니고 친구도 만나고 해야 하는 데 내가 무슨 꼴을 보겠다고 무슨 낯짝으로 외출을 하냐고 했다. 다만 아버지만 말을 않고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다고 했다. 면목이 없어 찾아갈 수도 일자리를 부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어쩌다가 자갈치로 외출을 다녀올 때면 한숨과 술만 몸에 가득 채우고 돌아왔다. 예전의 아버지 모습이 차츰 지워지고 있었다.

자갈치 낡은 아파트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며 살던 때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할머니가 밥 먹고 가라는 걸 뿌리치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후회했지만 교복치마가 터질 것처럼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아침을 먹을 수는 없었다. 참아야만 했다.

졸업을 앞두고 교복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지금은 교복을 살 여력이 안되는 게 우리 집 실정이다.

자율학습은 없어졌지만 학원을 다니는 몇 명의 학생을 제외하고 모두 자기주도 학습, 그러니까 스스로 학습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개인 과외를 하는 학생도 물론 있었다. 나도 예전엔 그랬지만 이제는 꿈도 못 꿀 일이 되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갈 때 쯤 되면 우리 모두는 파김치가 되었다. 이사를 하고 버스 타는 시간은 더 길어졌다. 자리에 앉으면 어둠이 내린 거리를 바라보거나 눈을 감는다. 대부분 수차례 이마를 버스 유리창에 찧지만, 그 날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잠도 오지 않는다. 언제 탔는지 실눈을 뜨고 바라본 곳에 젊은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마음속으로 나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오늘만은 엉덩이가 의자에 본드처럼 붙어 떨어지려 않는다. 강한 의지력을 앞세워 일어서지 않기로 결심했다. 할아버지가 한 걸음씩 이동을 하면서 힐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급기야 가까이 다가와 의자에 몸을 살짝 기댄다. 그래도 나는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몇 정거장만 가면 되니까 참자. 드디어 내릴 차례가 되었다. 자리를 지켰다는 뿌듯함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리가 아파서 더는 오를 수 없는 계단을 다 오른 느낌이었다. 내가 이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양손을 높이 쳐들었다. 이겼다는 표시는 분명히 해야 했다. 어둠속에서 남학생 하나가 손을 흔들며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기억 못할 수도 있지 싶어 나도 반갑게 웃어줬다. 자리를 내 주지 않았던 젊은 할아버지를 보고 아빠라며 불렀다. 신정민이란 이름이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정민이를 정류소에서 만났다. 열 번 째 쯤 됐을 때 작은 상자하나를 내밀었다. 초콜릿이 들어 있었고 쪽지에 좋아하는 것 같다. 사귀자’고 적혀 있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좋아하는 것 같다는 뭐냐. 바보 아냐 라고 했지만 기분은 최고인 날이었다. 그날 나는 계단을 단박에 뛰어올랐다.

 

할머니와 고모와 언니와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방에서 잔다. 언니보다 열 살 많은 고모는 아빠와 배다른 동생이지만 아빠도 어느 가족도 고모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은 적은 없다. 가끔 할머니의 무시무시한 타박이 고모를 강타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척 아팠다. 한 번은 아빠를 두고 고모는 우리 오빠라 하고 나는 우리 아빠라 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싸운 적이 있다. 내가 고모편이긴 해도 우리 아빠를 고모 오빠라 우기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코피가 났고 그 일로 고모는 오른쪽 허벅지 뒤쪽으로 불에 덴 자국처럼 상처가 났다. 고모나 나나 어리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 후로 몇 해를 더 아빠를 두고 고모와 나와의 긴장감은 팽팽하게 맞섰다. 아빠가 퇴근할 때는 누구랄 것도 없이 달려가 우리 아빠다 우리 오빠다’를 외치며 싸웠으니까. 내가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인정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고모도 나와의 자존심 때문에 끝까지 나를 협박했을 것이다. 할머니의 중재가 시들해질 무렵에야 고모와의 긴 싸움도 끝이 났다.

 

고모가 선물이다‘며 쇼핑백을 던지다시피 내밀었다. 까만색 미니스커트가 넘어진 가방에서 삐죽 나왔다. 잽싸게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봤다. 굵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기쁜

마음도 잠시였다.

이걸 어떻게 입으라고. 놀려.

이년이 이쁜 거 사줘도 난리네. 까만 레깅스랑 같이 입으면 달라 보일 거다. 다리 굵다고 가리면 나중엔 못 입어. 자신을 가지고 입어라 누가 니 허벅지만 보고 다니냐?

생각이상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민이 만날 때 입고 가야겠다.

 

 

아버지는 나보다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옛날에 도움을 준 사람이 냉동 공장에 취직을 시켜줬다고 했다. 어판장에서 일을 했던 아버지지만 궂은일을 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몹시 힘들어했다. 하지만 언니의 대학 등록금과 고3인 나의 학비, 그리고 동생과 고모, 할머니까지 생각하면 아버지는 어떤 일이든지 마다할 수가 없었다. 잔업은 도맡아 놓고 하는지 아버지의 몸에서는 생선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다. 어떤 날은 어깨에 파스를 붙이기도 했는데 피멍이 든 아버지의 어깨를 보며 울 뻔 했었다. 나는 씩씩한 표정으로 아빠의 배를 쓰윽 만지며 우리 아빠 배에 근육 생겼는데 하고 농담을 했다. 아버지는 차츰 배가 나오고 팔다리는 약해져 갔다. 귀밑뿐만 아니라 머리 전체로 번져가는 흰 머리카락과 깊게 파이는 주름, 아빠는 많이 늙어 보였다.

 

고모는 할머니와 아빠 밥만 차린다. 나머진 알아서 퍼 먹으라고 했다.

다 큰 너거들까지 시중 들어야하는 건 아니겠지.

고모가 그렇게 말을 할 때면 꼭 시샘 많은 친구를 보는 것만 같다. 나 같으면 학교 가는 조카 밥 차려주겠는데 밥 세 그릇만 퍼 담으면 될 걸. 어쩌다 우리들 밥을 퍼 담게 되는 날은 꼭 몇 마디의 말을 잔소리처럼 곁들여했다. 물론 고모도 아침엔 무척이나 바쁘다. 인스턴트 식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래도 밥을 차린 다는 건 내 경험상 절대 쉬운 일도 아니고 고모도 고모 나름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고모가 철드는 것보다 내가 철드는 게 빠를 것이다.

 

고모는 친구와 옷 가게 동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고모는 옷이 많은 편이다. 이사 하는 날 할머니는 입지도 못할 옷이라며, 가슴이 움푹 파인 옷이라든지 바지지만 미니스커트 같은 옷,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가지들을 죄다 내버리라고 했다. 과년한 딸년이 입고 다니는 옷 꼬라지가 이게 뭐냐며 한바탕 입 싸움이 있었다. 할머니와 고모가 싸울 때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날선 말투만 봐도 할머니와 고모는 핏줄인 게 분명했다. 자기주장이 강할 뿐 만 아니라 두 사람의 고집은 B형 피를 가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참 우리 가족은 엄마를 제외하면 모두가 B형이다. 할머니와 고모가 말다툼을 할 때면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귀엣말을 했다. B형과는 말을 말아야지‘라고. 내가 봐도 우리 식구들은 대체로 일단 우기고 보는 형이다. 그런 엄마도 내 생각을 얘기 할 때면 우리 딸은 지조도 있고 결단력도 있고 요즘엔 여자가 그래야한다며 나중에 뭐가 되도 크게 될 거라 했다. 세상에서 제일 나를 잘 아는 엄마가 보고 싶다.

 

정아 국이 먹고 싶다. 국이 없으니까 밥이 잘 안 넘어가

퇴근길에 사올 께. 무슨 국. 시락국. 육계장. 추어탕. 엄마 골라봐

조개 사다가. 도다리 사다가 미역국 끓이면 좋겠다. 민어 미역국도 먹고 싶은데.

엄마, 생선은 비린내 나서 싫은데. 담에 드시지. 아니면 오빠보고 해 달래든가. 오빠보도 생선 사오래서 엄마가 끓이며 되겠네. 오랜만에 엄마 솜씨 한번 봅시다.

인자 간도 못 맞추는 내보고 국 끓이라 하나. 딸년 하나 잘 뒀다. 안 먹어 이년아.

엄마는 왜 욕부터 하고 그래. 잘 됐네. 나도 음식하기 싫거든 고맙수.

 

새벽 댓바람부터 할머니와 고모가 신경전을 벌인다. 싸움의 승자는 고모다. 최근 들어 싸움의 승산이 고모 쪽인 것 보면 할머니 기가 나이에 눌린 것 같다. 나는 할머니의 등을 살짝 껴안아 기운을 북돋아 줄 때도 있다. 산복도로의 아침은 조용해서 낮게 깔리는 말도 또렷이 들렸다. 옆집에서 우리 집 흉을 보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 왔다. 우리 식구들 모두 조금은 성격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 신경통이 도진 할머니를 달래서 공원에 올랐다. 햇살이 만만찮아서 얼굴에 주근깨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할머니를 집에만 둘 수는 없었다. 이사 온 이후 외출을 하지 않는 할머니는 집안에서 조차 움직이는 걸 힘들어 했다. 계단을 오르내린 다는 건 할머니에겐 벅찬 일이긴 하다. 늦게까지 자겠다고 잠 깨우지 말라 는 언니도 심드렁한 표정을 지우고 공원의 풍경에 신나했다. 언니는 심지어 발끝을 들어 발레리나 흉내까지 내보였다. 할머니 잘 왔지. 언니 어때. 잘 한 거지. 나는 또 우쭐해져서는 거만을 떨었다. 내가 잘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떠벌리자 할머니는 할미 닮아 잘 났다며 쪼글 해진 입을 함박지게 벌려 웃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의 길이가 차츰 짧아져 갔다. 난간을 짚으며 올라 갈 만큼 가파른 길, 중간 중간 쉬면서 불빛이 만든 항구의 야경을 구경할 여유도 생겼다. 몇 걸음은 뛰어 오를 때도 있었다. 물론 집에 도착할 즘엔 여전히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는 더 이상 제어가 되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힘으로 오르던 때와는 달랐다. 요령도 생기고 다리에 탄력도 붙었다.

 

이 냄새 뭐야! 미역국 냄새, 음 바다냄새. 나는 코를 흠흠 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미역국에는 바다가 통째로 들어 있다. 고등어가 떼로 몰려다니고. 조기가 금빛을 그려댔다. 오징어도 난색을 띄며 스쳤고 대왕 고래가 거친 숨을 내뿜었다. 그런가하면 따뜻한 냄새, 엄마 냄새가 숨어 있었다.

밥 먹고 싶어 고모 밥 먹어도 돼.

이년아 이 시간에 밥 먹고 자면 낼 아침에 얼굴 빵 된다.

고모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씻고 나온 나에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미역국에 한 숟가락의 밥을 말아 내밀었다.

밥 먹고 공부 쫌만 하다 자라 바로 자면 내처럼 꿀벅지 되는 거 알제.

고모. 아예 저주를 하시지 저주를.

방으로 들어간 고모는 할머니의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지 할머니의 짜증 소리가 흘러 나왔다.

 

정민이와 일요일에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만 하는 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고모는 내 첫 번째 데이트가 수포로 돌아갈까 조언을 많이 해 주었다. 이럴 때는 꼭 엄마 같은 고모다. 고모가 사준 치마를 입고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았다. 모두들 괜찮다고 했지만 난감한 다리다. 고모께 등짝을 두 대나 맞고서 약속 시간보다 늦게 집을 나갔다. 정민이는 벌써 공부를 꽤 한 듯 지쳐보였다. 아마도 지난밤에 늦게 까지 공부를 했을 것이다. 내가 눈이 피로한 이유는 생애 첫 번째 데이트 생각에 잠을 설쳐서 란 걸 정민은 모른다. 남자 친구가 정민이 처음 이다‘는 사실은 절대 숨겨야 할 문제다. 남학생한테 인기가 없다는 것은 우리 또래 애들에겐 치명적인 오점이다. 아마도 우리 학교에서 남자친구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려 열 명 정도 일지도 모른다. 남자 친구가 생기지 않자 나는 여봐란 듯이 도도녀, 차도녀, 까도녀 스타일로 나갔다. 남자를 철없는 것들이라고 몰아 부치며 안하무인격으로 대했었다. 더구나 고3은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서 좀 더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야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다 속일 수 있어도 나만은 속일 수 없는 것처럼 정민은 내게 첫 번째 남자친구여서 아주 특별했다.

 

정민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공부를 했다. 가끔 눈을 들어 나를 힐끔거리거나 창밖을 보는 것을 제외하곤 정말 열심히 공부만 한 데이트다. 고모가 싸준 도시락은 정말 맛있었다. 정민이도 고모 음식 솜씨가 자기 엄마보다 나은 것 같다며 진짜 맛있다고 했다. 평소 고모답지 않게 깔끔하게 담긴 도시락을 보며 고모가 내편 같은 든든한 믿음이 생겼다.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온 정민이 푸른 하늘을 보며 손바닥을 펴 하늘을 떠받드는 시늉을 했다. 저 거대한 하늘, 우주 공간에 우리 말고 또 다른 생명체가 분명히 있을 거야. 정민은 과학적 근거를 대며 우주 이야기를 해 줬다. 별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정민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민이 시리우스라는 별 이름을 들먹이며 내 별에 대해 얘기 할 때는 환상 속에 던져진 것만 같았다. 내 별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오늘 밤 나도 내 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민이 꼭 어린왕자처럼 신비로워보였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꼭 누군가 뒤에 따라오는 느낌이 드는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은 계단이 처음처럼 길게 늘어나 있는 것 같다. 내가 힘들면 이 계단을 같이 오르는 귀신도 힘들겠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풀렸다. 언제나 나만 당한다는 건 불공평하니까 귀신도 마귀도 천사까지도 내가 계단을 오를 때면 같이 힘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귀신이라고 생각한 검은 형체는 아버지 였다. 아빠!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를 낚아채 듯 했다. 휘청이며 아버지가 중심을 잡으려 난간을 잡았다.

이놈아 아빠 넘어지겠다. 이 계단에서 넘어지면 축 사망인거 알지.

아빠는 크게 웃으며 어둠을 쫓았다. 팔짱을 끼고 계단을 오르는 내내 가로등이 다가왔다 멀어졌다. 빛이 밝았다가 희미해지기도 했다. 아빠의 등을 두드리며 우리 아빠 오늘 참 잘 했어요 라고 귀염을 떨어보았다. 수심과 피로가 엉킨 아빠의 얼굴이 조금 펴졌으면 좋겠다.

 

언니 어제 알바비 탓지. 만원만 빌리 주라. 나중에 다 갚으께. 저녁 되면 이놈의 배가 고프다고 난리를 피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내 배.

너 치부책에 다 적어놨다. 이자뿌지 마라.

알았어. 울 언니 최고. 내가 다 기억하지. 알러븅.

언니는 미대생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척척 그려내고 만드는 언니가 나와 비교 되는 게 싫었지만 때에 따라서 언니가 나의 자랑인 건 숨길 수가 없다. 식구들이 언니를 부추길 때면 눈치 빠른 엄마는 우리 작은 딸은 얼마나 똑똑한 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고 나를 치켜세웠었다. 언니 앞에서 위축되지 않으려 애쓴 적도 있고 언니와 다른 재능이 있나 나 스스로를 곰곰이 살피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나는 나의 재능을 발견 못했다. 이건 아주 슬픈 일이지만 나는 슬픔 따위에 짓눌리는 사람이 아니다. 언니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시간도 칼같이 쪼개 쓰는 것 보면 언니가 고모보다 더 어른 같이 보였다. 그런 언니가 쉴 틈 없이 벌어온 얼마 안 되는 돈을 내가 쓰는 게 양심에 조금 걸린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당당하게 언니에게 돈을 빌려 쓴다. 일종의 나만의 방어술 같은 것이라 결론지으면서. 언니는 이번에도 큰 상을 받았다. 도로 곳곳에 언니가 참여한 행사 광고탑이 서 있는 것만 봐도 아주 중요해 보였다. 언니는 나랑 대화 할 시간이 없는 것만 빼고 그런대로 잘 살아내는 경우에 속해서 나로선 안심이 된다.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나는 두 시간은 더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작심삼일이 되면 다시 작심을 하자고 붉은 물감을 풀어 혈서도 써 벽에 붙였다. 고모의 실크 스카프로 이마도 단단히 묵었다. 스탠드 불빛만 남기고 집안의 불도 죄다 꺼달라고 했다. 고모와 할머니가 소근 대며 낮에 일어난 일을 주고받았다.

조용히.

고3이라 봐준다. 가시나야 대충해라 어디 공부가 하루아침에 되것나

고모는 내가 아무리 이를 앙다물어도 가재미눈을 해도 꿈쩍 않는다. 오히려 재밌는 지 놀려댄다. 밤은 깊어가고 창문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바다 가까이서 듣던 소라 고동의 깊고 은은한 울림 같은 바람은 아니었다. 바람을 가르고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면 좋겠다. 빌고 싶은 소원이 가득하니까. 가족들의 숨소리는 물결처럼 높낮이를 달리하며 들렸다. 날카롭고 강한 고양이 울음이 몇 차례 지나갔지만 무사히 새날은 밝아왔다.

 

고모가 애인이 자주 바뀌는 것은 까다로운 성격도 있지만 대부분 허벅지 때문일 것이다. 소개팅이 있다며 패션쇼로 아침부터 요란하다. 고모가 여러 벌의 옷을 입어 봐도 결국은 짧은 치마에 검은 레깅스를 차려 입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을 맞추는 것이 고모는 세련미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엔 몸매를 감추기 위한 위장술로 보였다.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은 신체 부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고모는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드러내서 장점으로 살려야 한다고 했다. 고모의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역사이래로 해독불가 한 일도 더러 있는 것이다. 고모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며 얼굴이 활짝 펴서 들어왔다. 물론 양손에 음식을 잔뜩 들고서...

 

완전 내 스타일 있지.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나왔는데 블링 블링 알지

고모 그렇게 멋졌어?

말도 마. 나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는 데 완전 반한 거 같더라.

고모한테 반했다고? 설마 그 사람도 눈이 있었을 텐데.

이것이 확!

고모는 화가 났는지 내가 뜯고 있던 닭다리는 빼앗고는 육중한 허벅지로 나를 가격해 왔다. 할머니가 야밤에 뭔 짓이냐고 타박을 했지만 고모와 나는 괘념하지 않고 오랜만에 뭄을 풀었다. 고모와 장난섞인 몸싸움을 하고나면 야릇한 쾌감 같은 걸 느끼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쉬던 아버지가 삼사일에 한 번씩 쉬기도 하고 비오는 날이 이어지면 그나마 일도 나가지 않았다. 일본 원전의 방사능 사고 이후 일본에서 수입해 쓰던 생선의 물량이 줄어든 게 이유라 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이 싼 값에 수입되어 유통된 사례를 들면서 내동 창고 단속을 강화 한다는 뉴스가 떴다. 회사에서는 카메라맨의 행동에 빠르게 대처 못한 이유를 아빠에게 물었다. 화면에 아빠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할머니는 당신 아들이 쉬는 게 좋아서 인지 하루 종일 아버지 옆에서 수다를 떨었다. 아버지는 차츰 웃음을 잃어 갔다. 벼랑 위 계단을 오르는 아빠의 뒷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휘청휘청 달빛도 더러 흔들렸다. 뒷짐한 손에는 검은 봉지가 달려 있었다. 소주병 2개가 딸그락 딸그락 아빠를 잘도 따랐다.

 

버스에서 내려 왼쪽으로 스무 발자국 쯤 걸으면 집으로 오르는 계단이 공룡의 등뼈처럼 드러나 있다. 수직으로 오십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계단은 세 번으로 나눠 작은 공터를 끼고 있으며 계단 오른 쪽은 가난이 따닥따닥 붙은 밀랍 같은 집들이 쪽창을 내고 반대편으로는 화강암 바위가 거대한 화석처럼 벽을 만들고 있다. 검게 변한 화강암은 계단식의 화단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듯 보였다. 소나무를 제외하면 어떤 나무인지 구별 되지 않는 나무들도 비상하는 자세로 서 있다. 어디서부터 뿌리를 내렸는지 알 수 없는 담쟁이 넝쿨이 벽의 많은 부분을 덮었지만 높이가 주는 중압감은 아찔했다. 이 길을 믿고 걸어도 되는지 체중을 다 실어 실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물처럼 얽힌 골목으로 해가 뜨면 사람들이 개미처럼 쏟아져 나왔다. 잰걸음으로 길을 나서는 사람들 틈에 아버지도 나도 끼어 개미처럼 살아낸다.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골목은 한산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벽돌담 위엔 서너 개의 화분이 문패처럼 올라 있다. 비슷한 대문처럼 비슷한 화분과 화초들이 그늘의 생계 마냥 엉성하게 흙을 비집고 나와 있다. 할머니 손에 맡겨진 아이들이 삐죽삐죽 새순처럼 나오고 혼자 남겨진 어르신들이 햇볕을 쬐는 장독처럼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사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이웃을 만났다. 예전의 친구가 멀어지고 아프면 죽이라도 쒀 달려와 줄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이사 온 날부터 이웃 할머니들은 내게 말을 걸었다. 호구조사라도 하듯 따져 물었지만 꼭 알고 싶은 건 아닌 듯했다. 같은 질문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물었다. 단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들은 할머니들대로 할아버지들은 할아버지들대로 모이는 장소가 따로 있었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내외를 해서 한 곳에 잘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 애인 생겼다보네. 어느 할아버지? 내가 본 할아버지야? 할머니 왜 그렇게 쑥스러워해. 나도 다 알거든. 할머니 말동무도 하고 좋지 뭐. 다음에 나한테 소개 시켜줄 거지?

요것이 할머니를 놀리고 그래. 내가 애인이 어딧어.

할머니한테만 빵 줬다며. 우리 할머니가 조금 세련 됐긴 했지. 할머니는 좋겠네. 이러다 우리 할머니 시집가는 거 아냐?

고모 듣게 하지마. 그 년이 들으면 아마도 나를 가만 안 둘걸.

할머니는 내 놀림이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놀림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아 몇 번을 더 말을 던지듯 해도 싫은 척만 할 뿐 말리지도 야단을 치지도 않았다.

 

고모가 소금에 절인 배추 같다. 별명이 수다쟁이 일만큼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인데 이틀 동안 몇 마디 말을 하지 않는다. 고모가 이틀 동안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고모 신상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얼마 전 만난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지 어림짐작만 했다. 이럴 땐 모르는 척이 약인데 노처녀 고모를 그냥 놔둘 수가 없다. 캔 맥주 하나를 사다가 붉은 리본을 묶어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고모가 나를 끌어안고 훌쩍훌쩍 울었다. 고모의 외로움이 뭔지 전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엄마를 그리워 할 때면 무더위 때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처럼 간절한 어떤 것, 처진 아빠의 어깨를 볼 때면 주사 바늘이 피부에 닿기 직전의 두려움 같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의 눈물을 핑계로 설움이 내게로 밀려 왔다.

 

정아 우리 부침개 해 먹으까? 비가 오니까 김치 부침개 생각난다. 오랜만에 솜씨 좀 내봐라. 비오는 날은 뜨신데 누워서 엉덩이도 지지고 지글지글 삼겹살도 굽고. 쐬주 한 잔 하면 딱인데. 뭐가 이리 먹고 싶은 게 많으까.

할머니는 고모가 무슨 일이 있는지 아직 눈치를 못 챈 듯하다.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오지랖도 넓지 고모를 돕기로 했다. 가을비가 새벽부터 내리고 있었다. 비 그치면 예년보다 추워진다는 말에 마음부터 얼어드는 것 같았다. 고모는 냉장고에서 묵은 김치를 꺼내 잘게 쓸었다. 잔 파와 양파는 듬성듬성 쓸어 넣었고 풋고추는 잘게 다졌다. 오징어는 이가 약한 할머니 때문인지 다른 때 보다 더 잘게 다져넣었다. 밀가루를 풀고 간장을 따로 놓으면서도 고모는 진지했다. 평상시 같으면 음식을 하면서도, 음식을 해 식구들을 먹이면서도 음식 하는 거 싫다고 짜증을 냈을 텐데 오늘은 주부처럼 부침개를 부치고는 엄마 뜨거울 때 드시라며 살가운 말까지 한다. 음식을 해 먹인 다는 건 또 다른 사랑의 표현 같다. 제 살점을 떼어 주듯 제 시간과 노고와 감정을 발라 가족을 먹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음식하나로 의지가 되고 안심되고 믿음이 실린다. 음식을 통해 성장하고 관계가 더 돈독해지며 귀한 부분은 나누고 빈 부분을 매우고 넘쳐나는 부분을 덜어 부족분을 채워주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주 귀한 것까지도 기꺼이 줄 수 있는 사람들, 나의 가족이다.

 

엄마가 흩어놓은 일은 수습이 안 되는 모양이다. 퇴직해서 청산한 빚이 다가 아닌 듯했다. 빚은 바람에 날아간 홀씨처럼 뜬금없이 싹을 틔어 아빠를 괴롭혔다. 엄마의 씀씀이가 큰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음이 매몰차지 못했던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돈은 쉽게 빌릴 수 있었고 밀린 이자에 눈덩이 같이 커졌다고 했다. 아빠와 할머니의 말이 거세게 몰아칠 때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엄마가 힘들었던 건 간결해진 아빠의 말투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언니만 몰래 만나고 떠나버렸다. 남겨진 엄마의 짐은 고스란히 함께 이사를 왔다. 엄마의 짐을 볼 때마다 욕부터 해대는 할머니도 짐을 결코 버리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엄마 욕을 할 때면 나는 내가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못했다. 뜬금없이 눈물이 쏙 빠져 나올 때도 있었다. 할머니의 욕은 마술사들이 외는 주문처럼 집중력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마술을 외다 말고 담 너머를 오랫동안 바라 볼 때도 있었지만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아빠가 일자리를 잃었다. 수산물 수입업자는 아빠에게 책임을 전가 시켰다. 냉동 창고에 뜬 단속을 제 빨리 피하지 못한 책임 이었다. 능력도 안 되는 사람에게 일을 시켰다고 배상 요구까지 들먹였다. 아빠는 며칠을 끙끙 앓았다.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안 된다며 할머니를 등지고 눈물을 보였다. 아빠가 흔들리면 모든 게 위태로워 보였다. 아빠 우리를 봐서라도 힘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아빠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계단이 가파르지 않았다. 굵은 허벅지도 아무른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도움닫기를 하듯 계단을 뛰어 어둠이 내려앉아 수면 같아진 도시 위를 사뿐히 날아오르고 싶다. 하늘의 별들이 땅에 쏟아진 듯 밤의 도시가 찬란하다. 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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