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물가(詩詩한)

딸의 운동화

작은이1 2011. 3. 6. 02:29

 

 

 

운동화를 가만히 바라본다

걸음의 습관에 따라 닳은 밑면

홈이 조이고 있는 몇 개의 자갈을 보며

길의 유전자를 의심해본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을 건너 경사로를 디디던

잘못내린 길에서는 한참을 돌아 목적지로 향했겠지

수없이 멈추고 기다리고 달렸을 신발

먼지를 털어내고 끈을 풀어 물속에 담그자

보폭의 넓이에 따라 접힌 선이 분명해진다

강의실 앞자리에선 경청의 자세를 취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 때는 표정에 구김살 지고

가끔 하는 데이트에서는 긴장의 끈을 조였을지도

굳은살이 박혔다며 내밀던 발

아이는 밑바닥의 현실을 체험했을 것이다

세제를 풀어 발을 감싸던 속부터 씼는다

먼지와 뒤섞인 땀을 게워내는 신발의 내부

지장처럼 찍힌 발의 지문을 보며

발과 신발의 유대관계는 친밀했음을 알 수 있다

깨끗하게 씻어진 신발을 볕드는 곳에 둔다

아이의 모든 관계가 가뿐해졌으면 하는 마음

신발은 축축한 기억을 지우며 가벼워지고 있는 중이다

 

신발끈을 다시 묶으며 집을 나설 아이

바닥과 수평을 이루며 곧게 지탱시킬 몸 

힘차게 튕겨 오르는 햇살처럼

눈앞이 환해진다

 

 

심 정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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